
감독 : 알란 파커
<출연 : 케빈 스페이시, 케이트 윈슬렛>
1995년, 우리를 반전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던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
2003년, 우리를 다시 반전의 도가니에 몰아넣은 영화, 데이비드 게일.......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몰라도 이 두 영화의 key는 모두 케빈 스페이시가 갖고 있다. 그는 두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관객들에게 각인시킨 장본인이다. 케빈 스페이시는 이 두 편의 영화를 반전영화의 최고봉에 올려놓은 일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전영화가 대부분 그렇듯, 이 영화 역시 한 번 보고는 이해하기가 많이 어려웠다. 여제자와의 관계가 계획적이었던건지 우연이었던건지도 잘 이해하지 못했고, 사형제도의 불합리성을 표출하는 과정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쨌든 이 영화를 다 본 후의 느낌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것은 '개운하다!!' 이다. 내용상의 반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사형제도 존폐문제에 대한 과제를 던져주었다는 측면에서 데이비드 게일은 높은 점수를 줄만 하다. '인권이 중요한가? 범죄 억지력이 중요한가?' 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끊이지 않는 논쟁 중 하나이다. 논쟁의 결과가 명쾌하게 나오기 어렵겠지만 존폐에 대한 명확한 자기의식의 필요성을 이 영화가 부각시켜준 듯 하다.
정치권력에 저항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또한 목숨을 희생한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칭해야 하는가? 이 영화에서 나오는 표현대로 그들을 우리는 순교자라고 부를 수 있는가?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은 철학적으로 매우 확고한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돈이나 명예, 권력과 바꿀 수 없는 자기만의 철학이 누군가에게 손상되면, 의지가 확고한 사람들은 자신을 희생하기 마련이다.
누가 그런 말을 했다.
"철학을 하는 사람이 가난한 게 아니고, 가난한 사람이 철학을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득권층은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다. 그들은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있지만, 목숨과 가진 것을 바꾸려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 잃는다는 것은 생존 그 자체는 아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있어 잃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잃는 대부분의 것들은 생존권과 결부되어 있다.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뺏고 싶다면, 그들과 전쟁을 피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이치이다.
쥐나 사람이나 궁지에 몰리면 자신의 생명을 거는 법이다. 데이비드 게일(케빈 스페이시)과 콘스탄스(로라 린니)는 삶에 있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다. 그야말로 궁지에 몰렸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매우 정치적인 인물들이었다(사형제 폐지에 대한).
결국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사형제 폐지에 걸었다.
만약, 데이비드 게일이 행복한 가정과 총망받는 교수 자리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사형제 폐지에 자신의 목숨을 걸었을까? 또한 콘스탄스가 백혈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 있었을까?
2003년, 우리를 다시 반전의 도가니에 몰아넣은 영화, 데이비드 게일.......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몰라도 이 두 영화의 key는 모두 케빈 스페이시가 갖고 있다. 그는 두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관객들에게 각인시킨 장본인이다. 케빈 스페이시는 이 두 편의 영화를 반전영화의 최고봉에 올려놓은 일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전영화가 대부분 그렇듯, 이 영화 역시 한 번 보고는 이해하기가 많이 어려웠다. 여제자와의 관계가 계획적이었던건지 우연이었던건지도 잘 이해하지 못했고, 사형제도의 불합리성을 표출하는 과정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쨌든 이 영화를 다 본 후의 느낌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것은 '개운하다!!' 이다. 내용상의 반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사형제도 존폐문제에 대한 과제를 던져주었다는 측면에서 데이비드 게일은 높은 점수를 줄만 하다. '인권이 중요한가? 범죄 억지력이 중요한가?' 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끊이지 않는 논쟁 중 하나이다. 논쟁의 결과가 명쾌하게 나오기 어렵겠지만 존폐에 대한 명확한 자기의식의 필요성을 이 영화가 부각시켜준 듯 하다.
정치권력에 저항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또한 목숨을 희생한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칭해야 하는가? 이 영화에서 나오는 표현대로 그들을 우리는 순교자라고 부를 수 있는가?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은 철학적으로 매우 확고한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돈이나 명예, 권력과 바꿀 수 없는 자기만의 철학이 누군가에게 손상되면, 의지가 확고한 사람들은 자신을 희생하기 마련이다.
누가 그런 말을 했다.
"철학을 하는 사람이 가난한 게 아니고, 가난한 사람이 철학을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득권층은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다. 그들은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있지만, 목숨과 가진 것을 바꾸려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 잃는다는 것은 생존 그 자체는 아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있어 잃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잃는 대부분의 것들은 생존권과 결부되어 있다.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뺏고 싶다면, 그들과 전쟁을 피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이치이다.
쥐나 사람이나 궁지에 몰리면 자신의 생명을 거는 법이다. 데이비드 게일(케빈 스페이시)과 콘스탄스(로라 린니)는 삶에 있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다. 그야말로 궁지에 몰렸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매우 정치적인 인물들이었다(사형제 폐지에 대한).
결국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사형제 폐지에 걸었다.
만약, 데이비드 게일이 행복한 가정과 총망받는 교수 자리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사형제 폐지에 자신의 목숨을 걸었을까? 또한 콘스탄스가 백혈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 있었을까?



